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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궁 의 사계

서울 창덕궁 후원의 추경 ....

by 낮달 (月昕) 2023. 10. 31.

 

 

 

창덕궁 후원을  친구와 함께 다녀왔습니다.

이른아침  9시경 다행히 현장예약을 할수 있었지만  시간대별 거의 매진  12시 예약을 하고 

여유시간을 창경궁과 창덕궁에서 보냈다.

사계절 모두 아름답다고 하는데  가을 단풍에 후원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부용지에서의 아름다운 전각의 모습과 , 애련지의 정자의 반영 풍경,

관람지의 정자와 단풍의 반영은 한폭의  그림 입니다.

옥류천에 펼쳐진 정원은 굉장히 아름다운 코스인데  보수공사로 볼수 없어서 아쉼이 좀있었네요.

공사관련 공지사항은 없었는데 ,  현장에서 만난 통제구역 표시로 갈수없다니 ....

기회가 되면 다시 찾아와야 겠습니다.

 

2023.10.28. (토)  창덕궁  후원에서 ....

 

 

창덕궁 후원  부용지 (芙蓉池)  

주합루 (宙合樓)  어수문(魚水門) 

 

 

 

 

 

 

창덕궁 후원  부용정(芙蓉亭) 

 

 

 

창덕궁 영화당 (映花堂) 

창덕궁 후원의  건물이다. 주합루의 동남쪽, 부용정의 동북쪽에 있다.
'영화(暎花)' 뜻은 '꽃(花)과 어우러진다(暎)'이다.

주변에 아름다운 꽃이 많이 피어 지은 이름인 듯하다.

'暎(영)'은 '비치다'는 의미지만 시에서는 '어우러진다'는 뜻으로 많이 쓴다.
현판 글씨 는 영조가 1754년(영조 30년)에 직접 썼다.

 

 

 

 

창덕궁 후원 애련지(愛蓮池)

애련정(愛蓮亭)  

창덕궁 후원에 위치한 애련정은 숙종 12년에 애련지에 세운 정자로 연못에 핀 연꽃을 감상하던 정자다.

 

 

 

 

 

 

 

 

연경당 (演慶堂) 

안채 선향재(善香齋)  /  장락문(長樂門)  /  장양문(長陽門)  / 수인문(修仁門)  / 통벽문(通碧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후원에 있는 조선후기 상류주택 형태의 궁궐건물. 주택. 보물.

궁궐의 후원 안에 지어졌으면서도 사랑채 · 안채 · 안행랑채 · 바깥행랑채 · 반빗간 · 서재 · 후원

정자 및 연못을 완벽하게 갖춘 주택건축이다. 이른바 99칸집이라 불리고 있으나

현재 건물의 실제규모는 109칸 반이다.

연경당은 사랑채의 당호(堂號)이자 집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동궐도(東闕圖)」에는 반빗간 구역에 5칸 규모의 창고와 5칸 규모의 행각(行閣)이 있고,

측간 1칸, 헛간 3칸이 그려져 있어서 원래의 총 규모는 123칸 반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궁궐지(宮闕誌)』에는 120칸으로 적고 있어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창덕궁 연경당 [昌德宮 演慶堂]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창덕궁 후원 관람지 

 

 

 

 

창덕궁 후원  관람지의  관람정 

언제 지었는지 모른다. 1828년 ~ 1830년 사이에 그린 《동궐도》에는 안보이고 헌종 때 제작한

《궁궐지》에도 관련 기록이 없는데, 1907년(융희 원년) ~ 1908년(융희 2년)에 만든 《동궐도형》에는 보인다.

그래서 고종 때 후원을 정비할 때인 1903년(광무7년) 경 아니면 순종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긴

1907년(융희 원년) 무렵에 지었을 것으로 추측한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 이순우 연구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적어도 1901년(광무5년)에는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인 버턴 홈스(Burton Holmes)가 1901년에 발간한 《The Burton Holmes Lectures》에

관람정 사진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1901년 이전에 지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아직까지는 정확한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관람정의 연못은 관람지(觀纜池)이다. 한반도 모양이라 반도지(半島池)로도 부른다.

 

 

 

 

 

 

 

 

 

 

 

 

 

창덕궁 후원 승재정 

언제 지었는지 모른다. 1828년(순조 28년) ~ 1830년(순조 30년) 사이에 그린 《동궐도》에는 보이지 않고,

1908년(융희 2년)에 그린 《동궐도형》에는 나타나므로, 그 사이에 지은 듯하다.

건립 후 큰 변화 없이 오늘에 이른다.

 

모든 기둥에 주련을 걸었다. 주련에는 시를 적어놓았다

 

龍蛇亂亂千章木 (용사난획천장목)
용과 뱀은 천 그루 거목(巨木)을 어지러이 휘감았고
環珮爭鳴百道泉 (환패쟁명백도천)
패옥(珮玉)들은 백 갈래 샘물을 울게 하는구나
披香殿上留朱輦 (피향전상류주련)
피향전(披香殿) 위에서 임금 수레 머무니
太液池邊送玉杯 (태액지변송옥배)
태액지(太液池) 연못가에 옥 술잔을 보내오네

 

 

 

 

 

 

창덕궁 후원 불로문(不老門) 

 

 

 

창덕궁 후원 금마문(金馬門)

 

 

 

 

창덕궁 후원   昌德宮 後苑

Secret  Garden  of  Changdeokgung  Palace 

 

창덕궁 후원은 태종 대 창덕궁 창건당시 조성되었으며 , 창덕궁뿐만 아니라 창경궁의 후원 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때 대부분의 정자가 불타버리고 , 1623년 인조때부터 개수, 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이루었다.

창덕궁후원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정원을 조성하여,인위적인 손질을 최소화 하면서도

자연을 더 크게 완성시킨 절묘한 솜씨를 자랑한다.

4개의 골짜기에 각각 부용지,애련지,관람지,옥류천 정원이 펼쳐진다.

4개의 정원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크고 개방된곳에서 작고 은밀한곳으로 ,인공적인곳에서 

자연적인곳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며 결국은 큰자연인 뒷산 매봉으로 연결된다.

세계 대부분의 궁궐정원은 보고 즐기기 위한 관람용인데 비해, 창덕궁후원은 

여러복합적인 기능을 수용한 정원이었다.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며 사색에 잠기던곳이 었고 때론 연회를 열고 활쏘기 놀이를 즐기던 곳이 었다.

왕이 참관한 가운데 군사 훈련도 행해졌고 , 왕과 왕비가 백성들의 생업인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기도 했다.

 

창경궁 후원 안내판에서 ...

 

 

 

 

서울 창덕궁 후원 ( 왕실정원 ) - (2)

후원은 크게 네 구역으로 나뉜다. 첫째는 입구의 언덕을 넘어서면 닿게 되는 부용지 일대로, 네모난 못 주위에 부용정, 어수문과 주합루, 영화당이 들어선 지역이다. 둘째는 부용지에서 북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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