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공원 출사후 한적함과 여유로움이 있는 종묘를 들러보았다.
오랜만에 왔지만 종묘 정전(正殿)이 노후(지붕)및 주변 정비 보수 공사가 진행중 이라서 어수선하다.
근처 영녕전의 모습과 주위 풍경을 렌즈에 담아왔습니다.
종묘 망묘루(望廟樓)
왕이 제향시 이곳에 들러 정전을 바라보며 선왕을 추모하고, 나라와 백성을 돌보고자 마음을
가다듬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을 가진 건물.
종묘 중연지
종묘 어숙실(재궁)
어숙실은 재궁 또는 어재실(御齋室)이라고도 하는데, 왕이 목욕재계하고 의복을 정재하여
세자와 함께 제사 올릴 준비를 하던 곳이다.
제향에는 임금이 친히 올리는 친행(親行)과 세자나 대신이 임금을 대행하여 올리는 섭행(攝行)이 있다.
어숙실 일곽은 둘레담과 정문, 동협문, 서협문으로 싸여 뜰을 중심으로 북ㆍ동ㆍ서쪽에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북쪽의 건물은 어재실, 동쪽은 세자재실, 서쪽은 어목욕청이다.
어숙실 서북쪽으로 종묘 정전이 위치하는데, 제향 때 제관은 어숙실 서협문을 지나
정전 동문을 통하여 정전에 이르게 된다.
종묘 정전 (正殿) 보수공사 진행
2020.06.22. ~ 2022.12.08
숭고하고 고전적인 건축미의 극치, 종묘의 ‘정전(正殿)’
조선왕조는 새 왕조를 건국하며 ‘유교’를 통치이념의 근간으로 삼았다.
태조 이성계는 ‘국가의 도읍지에는 반드시 세 곳의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고대 중국의 도선 계획 원칙에 따라
왕이 정무를 보는 경복궁을 중심으로 왼쪽(동쪽)에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종묘를,
오른쪽(서쪽)에는 신에게 제사는 지내는 사직단을 두었다.
그리고 1395년 9월 29일에 경복궁과 함께 종묘를 완공했다.
이후 왕이나 왕비가 승하하면 궁궐에서 3년상을 치른 뒤 ‘신주(神主)’를 종묘로 옮겨와 모셨다.
정전(正殿)에는 공덕이 뛰어난 임금들을 모셨는데 신실 19칸에는 태조를 비롯해
고종과 순종까지 왕과 왕비의 신위 49위를 모셨다. 이러한 정전은 종묘의 중심 부분으로
긴 정전의 앞에 넓은 ‘월대(중요한 건물 앞의 넓은 대)’를 두었고 사방으로 담장을 둘렀다.
남쪽 신문으로는 혼령이, 동문으로는 임금을 비롯한 제관들이, 서문으로는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공과 춤을 추는
일무원(종묘제례 때 여러 줄로 서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출입했다.
1395년(태조4) 당시에는 규모가 신실 7칸이었으나 이후 여러 차례 늘려지어 현재는 19칸에 이르는
매우 긴 목조 건물이 되었다. 그러한 정전의 묘정 월대는 안정을 의미하고,
건물 전면에 무한하게 반복되는 듯한 기둥의 배열은 왕위의 영속을 의미한다.
그리고 수평으로 하늘 끝까지 펼쳐지는 듯한 지붕은 무한을 상징하고, 그 모습은 숭고하고 고전적인 건축미의 극치를 이룬다. 현재 정전은 국보 제227호로 지정되어 있다.
아울러 정전 맞은 편 왼쪽(동쪽)에는 배향공신당(配享功臣堂, 이하 공신당)이 있다.
이곳은 역대 임금들을 보좌한 공신들의 사당으로 총 16칸 규모이며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이 안에는 국가와 왕실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기리고 명복을 빌기 위해 모두 83위의 공신 위폐가 있다.
임금의 생존 시에 공로가 큰 신하들의 신위를 해당 임금의 묘정에 배향했는데, 제1대 태조의 공신 조준(趙浚)을 시작으로
제27대 순종의 공신 서정순(徐正淳)까지 모두 제왕 19위에 해당하는 공신 83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그 외 특기할 만한 사항은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의 신주가 배정되었다가 제거되었다는 사실이다.
생전에 공적이 많은 사람을 해당 제왕이 세상을 떠난 뒤 선정한 것인데
이완용은 ‘을사오적’ 중 하나로 왕조의 수치인 것이다.
그리고 오른쪽(서쪽)에는 칠사당이 있다. 그 옆쪽 서문 밖에는 제례악을 준비하는 악공청을 두었다.
칠사당은 일곱의 작은 신들에게 왕실과 궁궐의 모든 일과 만백성의 생활이 아무 탈 없이 잘 풀리도록 기원하는 사당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칠사 국행지신(國行之神, 도로를 주관하는 신), 공려지신(公厲之神, 후사가 없는 제후의 신),
국문지신(國門之神, 출입을 주관하는 신), 중류지신(中霤之神, 당실과 거처를 주관하는 신),
사조지신(司竈之神, 음식의 일을 주관하는 신), 사호지신(司戶之神, 출입을 주관하는 신),
사명지신(司命之神, 사람의 선악에 따라 응보하는 신)으로 봄의 사명과 사호,
여름의 사조와 중류, 가을의 국문과 공려, 겨울의 국행을 이르는 말이다.
사계절에 나라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사당이다.
이를 통해 토속신앙과 유교사상이 결합한 국가 의례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출처 : 시사매거진(http://www.sisamagazine.co.kr)
종묘 정전 남신문
왕실의 조상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라, ‘별묘 영녕전’
영녕전은 1421년(세종4)에 정전의 별묘로 지은 건물이다.
이곳은 ‘왕가의 조상과 자손이 길이 평안하라’는 뜻으로 이성계의 4대조와 정전에서 옮겨온 왕들의 신주를 모셨다.
따라서 시설과 공간 형식은 정전과 비슷하지만 규모가 좀 더 작고 친밀하게 지어졌다.
정전과 같이 2중으로 된 월대 주위에 담장을 두르고 동쪽, 남쪽, 서쪽 세 곳에 문을 두었다.
원래 6칸 규모였으나 여러 차례 좌우에 칸을 만들어 현재 신실은 모두 16칸이다.
제왕의 신주 16위, 왕후의 신주 18위 총 34위가 모셔져 있다.
그중 가운데 4칸은 태조의 4대조를 모신 곳으로 좌우 협실보다 지붕이 높다.
동쪽에는 제사 도구를 보관하는 제기고를, 서남쪽 바깥에는 제례악을 준비하는 소악공청을 두었다.
이곳에는 정전과는 달리 ‘공신당’이 없다.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는 추존 임금이기 때문에
배향공신이 없을 뿐 아니라 영녕전에 모셔진 후대 임금들이 공신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조상에게 올리는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쪽 협실과 동쪽 협실에 각각의 공신이 포함돼 총 92명을 배향공신으로 모시고 있다.
현재 보물 제821호이다.
출처 : 시사매거진(http://www.sisamagazine.co.kr)
종묘 중연지
물고기가 살지 않고,향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종묘가 엄숙한 제례 공간이라는 것을 강조 .....
종묘 외대문(外大門)
종묘의 정문으로 창엽문(蒼葉門)이라고도 하며 정면 세 칸의 평삼문(平三門)으로 되어 있고
그 좌우로는 종묘 외곽을 두르는 담장과 연결되어 있다.
원래 외대문은 전면 중앙에 난 돌계단으로 오르내리게 되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도로를 조성하면서
노면이 높아져 땅속에 묻히고 한동안 단벌의 장대석 기단만 있었다.
2009년 매몰된 외대문의 계단이 발굴되었다.
지금은 외대문 주변을 전체적으로 낮춤으로써 외대문의 계단을 노출시켰고,
따라서 외대문으로 입장할 때엔 돌계단을 이용한다.
종묘추향대제 : 매년 5월 첫째 일요일 , 11월 첫째 토요일에 두 차례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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