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여행이야기

경기 여주 세종대왕 영릉英陵 ....

낮달 (月昕) 2025. 5. 14. 10:58

 


여주의 세계유산

"세계유산협약이 규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

여주 세종대왕 영릉 英陵을 다녀왔습니다.

전철이 개통된후 이곳 구간은 처음 이용하는 곳으로 일단 세종대왕역 에서 하차 해보니

평일은 노선버스가 그리 많치 않는곳이다 .

기다림끝에 찾아간 곳이지만 승용차가 아니면 접근성이 쉽지가 않은 곳이다.

평일인돼도 많은분들이 이곳을 찾은듯 합니다.

며칠 있으면 세종대왕 나신날 ( 5월15일 ) 이라고 합니다.

이곳 입구 광장에는 과학기구의 복원및 유물과 자료들을 전시해놓아서

대왕의 역사를 한눈에 볼수 있는 곳 이기도 합니다.

청명한 날씨 5월의 짙은 녹음속에 이곳 영릉 산책길을 걸어도

매우 좋을듯 합니다.

2025.05.13. (화) 여주 세종대왕 영릉英陵 에서 ....

 

 

 

정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해시계 자격루, 관천대, 측우기,혼천의 등

각종 과학기구를 복원해 놓았으며

대왕의 업적과 관련되어 여러 가지 유물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학술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영릉구재실(齋室)

​재실은 제사(祭祀)를 지내기 전에 목욕재계(沐浴齋戒)하는 집이다.

보통 묘소(墓所) 아래에 지어놓는다.

이곳에서는 제사 전에 족속(族屬)들이 모여 재계하면서 제사를 준비하고, 때에 따라서는

제사를 지내기도 하며 살림집을 부설하여 묘소를 수호(守護)·관리(管理)하기도 한다.

재실은 보통 묘소나 선산 혹은 종산 근처에 세운다.

그 인근에는 제사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목적에서 위답(位畓)을 설정한다.

재실은 향(香)과 축문(祝文)을 보관하는 향대청(香大廳) 및 제청(祭廳), 헌관과

집사들이 재계하는 집사청(執事廳),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신주(神廚), 제기 등을

보관하는 제기고(祭器庫) 등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묘소와 재실 및 위답을 수호·관리하기 위해

묘지기나 산지기가 생활하는 살림집을 부설하였다.

자료 출처 : 한국민속대백과사전-국립민속박물관

 

영릉 신재실(新齋室)

​이 건물은 2006년, 2017년 발굴조사 결과와 조선 후기의 문헌인 「영릉보토소등록」과

「춘관통고」의 기록을 근거로 하여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한 재실입니다.

영릉(英陵) 은 조선 4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능이다.

영릉은 조선왕릉 중 최초로 같은 봉분에 왕과 왕비를 같이 모신 합장릉의 형식으로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에 세종, 오른쪽에 소헌왕후를 모셨다.

능침 배치는 『국조오례의』의 예를 따랐으나, 봉분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다.

병풍석이 생략되자 병풍석에 새기는 십이지신상은 난간석에 문자로 새겼다.

내부 방은 석실(돌방) 대신 회격(灰隔, 석회와 가는모래, 황토를 섞은 혼합 물질)으로 만들었고,

석상(혼유석)은 2개를 배치하였다.

원래 영릉은 1446년(세종 28) 소헌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헌릉과 인릉 경내

인릉 자리에 조성되었고, 4년 뒤 세종이 세상을 떠나자 영릉에 합장하였다.

그러나 영릉이 풍수상 불길하다고 하여 세조 대부터 영릉을 옮기려고 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하였다가 1469년(예종 1)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옮기면서 옛 영릉에 있던 능침 석물과 신도비는 땅에 묻었고, 여주로 옮기면서 능침의 석물은 다시 만들었다.

- 조선왕조 릉에서 -

조선의 제 4대 왕 세종의 이름은 이도(李祹), 자는 원정(元正)이고,

    시호는 장헌(莊憲)으로, 정식시호는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

    (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다.